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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不狂不及

배디링 2006. 12. 9. 19:08

미쳐야 미친다 (不狂不及)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라는 책이 요즈음 화제다.

미치지(狂) 않으면 미치지(及) 못한다는 화두를 조선시대의 인물들의 족적 속에서 사례를 통해서 풀어간 재미있는 책이다. 저자인 정민 교수(한양대 국문과)는 이 말을 이렇게 푼다. “세상에 미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큰일이란 없다. 학문도 예술도 사랑도 나를 온전히 잊는 몰두 속에서만 빛나는 성취를 이룰 수 있다. 한 시대를 열광케 한 지적, 예술적 성취 속에는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하는 광기와 열정이 깔려있다.

 

 

  정민 교수는 이 책 속에서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열정과 광기를 수채화처럼 그려놓았다. 그 많은 조선의 선비 지식인 중에서도 그가 주목한 이들은 권력의 중심부에서 언제나 비껴서 있었던 주변인이자 마이너리티였다. 하긴 권력의 중심부에 서있었던 선비들의 광기와 열정은 피튀기는 당파싸움에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싶은 생각이 일지도 않았을 것이다.

 

  허균,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김득신 등 재기와 문예가 넘치는 선비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들이 미친 듯이 몰두했던 일들이 꼭  우리의 가까운 삼촌이나 이웃의 아저씨들의 이야기처럼 친근하게 느껴져와서 서양의 고전을 읽는 것과는 전혀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박지원도 이런 “미쳐야 미친다”라는 류의 글을 쓴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 내용 중 하나를 정민 교수는 이렇게 소개한다. 글에 미친 선비 이야기다.

 

   “글을 잘 쓰는 선비가 있었다. 그가 일찍이 과거를 보러갔다. 붓을 열심히 돌려가며 답안을 작성하고 있는데, 글 한자가 유난히 잘 써졌다. 왕희지의 글체와 너무 유사하였다. 자기가 쓴 글이지만 자기가 보기에도 너무 잘 썼다. 그래서 그는 답안 작성도 잊어버리고 하루 종일 그 글자만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차마 그냥 버리지 못하고 고이 접어 품에 안고 돌아왔다.”

 

  과장(科場)에서 답안을 작성하다가 자기가 쓴 글에 도취되어 과거를 망친 선비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과거는 망쳤지만, 그는 필경 무엇인가를 크게 성취(及)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 성취가 꼭 입신출세성공이 아니더라도 큰 문제가 아니다. 마음의 성숙과 확대 그리고 깊은 침잠의 경지에 이르는 것도 크다면 매우 큰 성취이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도 이렇게 미쳐서(狂) 미친(及) 사람 중의 하나이다. 40세의 야심만만한 나이에 당파 싸움에 몰려 18년 간의 유배 생활에 처해진다. 불평과 한탄으로 세월을 보낼 법도한데 그는 곧 미칠(狂) 일을 찾아낸다. 18년의 강진 유배 동안에 그는 책에 미친다. 책을 읽기에 미치고, 사색하기에 미치고, 글 쓰기에 미친다. 그래서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다. 심오한 사상과 주장이 담긴 500여권의 책을 집필한다.

 

  이 책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미쳐야 미친(狂而及) 무수한 예들을 기억한다. 불가(佛家)의 도리(道理)에 추구하고자 중국과 인도를 거치고 세계의 지붕인 파미르 고원을 넘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가로지르는 대장정을 펼친 신라 성덕왕 시기(AD 723)의 혜초 스님이 그렇고, 지금도 이 지구상에서 가장 험난한 길로 알려진 실크로드를 13세기에 이미 섭렵한 마르코 폴로가 그 예다. 미치지(狂) 않고서는 해낼(及) 수 없는 일을 그들은 해낸 것이다.

  물론 가까운 예도 많다. 에디슨도, 빌 게이츠도, 스필버그도, 정주영도, 이병철도, 박정희도 모두가 미칠 정도로 자신의 신념에 투철했고, 그 성취에 매달렸기에 그들은 남들이 못하는 일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요즈음에도 미쳐야 미치는 일(不狂不及)을 못 보는 것은 아니다. 수 십 명을 연속해서 희생시킨 희대의 살인마도 不狂不及의 한 예이긴 하다. 그러나 저주스런 不狂不及이다. 자신과 타인의 삶의 질을 고양(高揚:upgrade) 시키는 쪽으로 不狂不及이 일어나야 한다. 모든 전문분야에서 不狂不及이 일어나야 한다. 황우석교수와 그 휘하의 젊은 연구원들의 不狂不及이 우리나라를 생명공학의 선두에 서게 했다. 아테네 올림픽에서의 좋은 성적도 우리의 젊은이들의 不狂不及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不狂不及의 활기찬 역동이 넘치는 사회로 우린 가야한다.

 

출처 : 아름다운 영혼
글쓴이 : 솔로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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