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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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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관광명소 안내

안동 8경 내고장 이야기

2009. 9. 19.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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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고장 안동

 

안동팔경 

 1경> 선어모범(仙魚暮帆) / 선어대 저문 날의 돛단배

 2경> 귀래조운(歸來朝雲) / 귀래정의 아침 구름 

 3경> 서악만종(西岳晩鐘) / 서악사의 저녁 종소리

 4경> 임청고탑(臨淸古塔) / 임청각과 오래된 전탑
 5경> 학가귀운(鶴駕歸雲) / 학가산으로 몰려드는 구름
 6경> 연미세우(燕尾細雨) / 제비원에 내리는 이슬비
 7경> 도산명월(陶山明月) / 도산서원의 밝은 달
 8경> 하회청풍(河回淸風) / 하회마을의 맑은 바람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병학지남연의(兵學指南演義)'의 저자인 대산 이상정(1710-1781)이 만들었다고 하는 안동8경임

 

선어대

 낙동간 상류지류인 길안천의 절경으로 이곳의 하류에 선어대가 있고 낙동강을 이룬다.

 

예전에는 선어대에 나룻터가 있었으나 지금은 철선으로 대체되었으며 양쪽에 쇠줄을 묶어 놓아 쇠줄을 당기면서 강을 건넌다.

 선어대의 바람솔밭

 

고산정(孤山亭)

정유재란시 안동 수성장으로 활약하여 좌승지에 증직된 바 있는 성성재 금난수(惺惺齋 琴蘭秀 1530∼1599)선생의 정자이다. 선생의 행장(行狀)에 따르면 선생이 35세 되던 1564년(명종 19)에 당시 선성현(宣城縣)의 명승지일(名勝之一)이었던 가송협(佳松峽)에 짓고 일동정사(日東精舍)라 부르며 늘 경전을 가까이 한 채 유유자적하였다 한다.


안동팔경의 하나인 가송협의 단애(斷崖)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주위에는 외병산(外屛山)과 내병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낙동강의 상류인 가송협의 건너에는 송림과 함께 독산이 솟아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건립당시 사정과 주위의 절경에 대해서는 「일동록(日洞錄)」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여기에 따르면 창건 당시부터 예안지방의 대표적인 절경으로 알려져 그의 스승인 퇴계(退溪)선생도 누차 문인들과 함께와서 영시유상(詠詩遊賞)하였다 한다.
′고산제영′(孤山題詠)에는 퇴계문도를 비롯하여 재경관인(在京官人)들까지 �아 차운(次韻)한 시(詩)가 수백수에 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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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인데, 3m가량의 축대를 쌓아 대지를 조성한 후, 얕은 기단위에 자연석 덤벙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다. 모두 원주를 사용하였는데 주두상부에는 보아지를 끼웠으나 외부에는 초각을 하지 않고 내부에만 초각을 하였다. 5량가인데 종량 위에는 키 큰 동자주를 세워 여기에 소로를 끼워 장혀와 창방을 받게 하였으며, 좌측 마루상부에는 우물반자를 설치하였고 귀에는 선자연을 걸었다. 어간의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좌, 우에 온돌방을 꾸몄는데 좌측방은 통간으로 하였으나 좌측방은 뒤쪽의 1간만을 온돌방으로 꾸며 결국 마루는 ㄱ자형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전면과 양측면에는 계자난간을 둘렀는데 정자로의 출입은 난간의 양측 끝에서만 하게 하였다.
주위의 빼어난 경관과 잘 어울리게 조성한 조선시대 정자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고, 건물도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귀래정(경상북도민속자료 제17호)

귀래정입구

고성 이씨 안동 입향조 이증의 둘째 아들인 낙포 이굉이 지은 정자이다. 공은 25세에 진사, 40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지평, 상주목사, 개성유수 등 직을 지내다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귀양을 가기도 했다. 중종 8년(1513) 벼슬에서 물러나 안동으로 퇴거하여 부성 건너편 낙동강이 합수되는 경승지에 정자를 짓고 도연명의 [귀거래사] 글 뜻과 너무나 흡사해 그것으로 정자의 명칭을 삼았다 한다.  

 귀래정전경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誌)』에는 안동의 수 많은 정자 가운데 귀래정(歸來亭), 임청각(臨淸閣), 군자정(君子亭), 하회의 옥연정(玉淵亭)을 으뜸으로 꼭고 있다. 이곳에는 주인을 비롯해 농암 이현보, 송재 이우, 택당 이식, 백사 윤훤 선생 등 30여 명의 시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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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태/방법/업적
누하부는 목주를 받쳤으며 온돌방의 아궁이가 마련되어 있다. 규모가 작고 꾸밈새가 검박하나 전면에 큰 누마루를 두어 그런대로 별당으로서의 여유와 운치가 있는 집이다. 원래 넓직한 후원터에 담장돌림 없이 산전에 위치해 있었는데 산과의 공간적 단절이 없이 그대로 산록의 연장처라고 볼 수 있는 위치였으며 별당중에서도 매우 여유있는 배치형식을 보이는 예였다고 하겠다.

 

 blog.daum.net/chaedh58

 

서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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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악사(西岳寺)는 본부(本府)의 사악(四嶽) 중의 하나로 지덕을 돕기 위한 비보사찰이다. 본부의 사악은 동(東)은 동악이라 하며 절이 있고, 남(南)은 남산인데 순천사가 있으며 서(西)는 서악이며 절이 있다. 그리고 북(北)은 금학산인데 수정사라는 절이 있다.
건물로는 원통전과 요사채 2동이 있다. 주법당인 원통전 내부에 있는 불상은 근래에 제작한 것이고 탱화 6점은 보존 가치가 있는 유물로 평가되는데, 6점 중 3점은 1770년(영조 45)에, 1점은 1868년(고종 5)에 제작한 것이다. 또 법당 안에 있는 동종은 1933년 3월 조성된 것으로 연대는 오래되지 않았으나 조선시대 범종 양식을 충실히 따른 귀중한 유물이다. 절 입구 바위에는 ‘연파독역산(蓮坡讀易山)’이라는 글귀가 남아 있다. 이 글귀는 조선 후기 한성판윤을 지낸 장화식(張華植:1853-1938)이 이곳에서 《역경(易經)》을 읽었다는 뜻으로, 절 뒤편에 장화식의 묘가 있다.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 6.25때 소실된 것을 1954년에 중건하였다.
 
이곳의 석양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서악사루전일락(西岳寺樓前日落)′이라 하여 안동팔경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임청각 보물182호(1963.01.21)

 안동임청각정침군자정 / 안동시청

임청각은 우리 나라에서 현존하는 살림집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500년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안동 고성 이씨의 대종택 이다.
세칭 99칸 기와집으로 알려진 이 집은 안채, 중채, 사랑채, 사당, 행랑채는 물론 아담한 별당(군자정)과 정원까지 조성된 조선 시대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었다. 일제시대 철도 부설 때 50여 칸의 행랑채와 부속건물을 철거당하고도 이런 규모를 보여주는 99칸 집이었다.
조선 세종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李原, 1368∼1429)의 여섯째 아들인 영산현감 이증(李增)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여기에 자리잡음으로써 입향조가 되었고 이증의 셋째 아들로 중종 때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이 지은 별당형 정자이다.


'임청각'이라는 당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구절 중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 가에서 시를 짓기도 하노라.’라는 싯구에서 ‘임(臨)자’와 ‘청(淸)자’를 취한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임청각은 귀래정, 영호루(映湖褸)와 함께 고을 안의 명승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안동시 법흥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물 제182호로, 앞의 7층전탑은 국보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다.
 
학가산

 kr.blog.yahoo.com/dyddn3636

학가산은 경북 안동시 북후면과 서후면, 예천군 보문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 870m이다. 
각 지방에서 보이는 모양에 따라 다르게 부르기도 하는데 안동에서는 울퉁불퉁하게 보인다고 '문둥이봉', 영주에서는 평평하게 보여 '선비봉', 예천에서는 모습이 수려하다 해서 '인물봉'이라 한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국사봉인데 정상에 서면 예천, 안동, 영주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산의 남쪽면에는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몽진(蒙塵, 먼지를 뒤집어쓴다는 뜻으로, 임금이 난리를 피하여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김을 의미함) 때 쌓은 것이라는 학가산성이 남아 있다. 성 위에서 내려다보면 낙동강 줄기가 보인다.

 삼모봉과 유선봉 / kr.blog.yahoo.com/dyddn3636

 

학가산은 숲이 울창하고 등산로가 조용할 뿐만 아니라, 유서 깊은 오지 마을과 경승지를 품고 있어 당일 산행코스로 알맞은 산이다.
 
학가산성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하여 안동으로 몽진(蒙塵)하였을 때에 쌓은 것이라고 전하여 오고 있다. 안동지역의 다른 산성들 중에도 공민왕이 쌓았다는 전설을 가진 것들이 많이 있으나 공민왕이 안동에 머문 기간 등으로 생각해 보아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산성은, 산의 남쪽 정상부에 자리잡은 선암사(仙岩寺)(지금: 애련암)에서 약 10분 오르면 오른쪽 성벽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성은 산의 지형을 이용하면서 암반위에 정연히 쌓여진 석성(石城)이며 중간 중간이 많이 허물어져 7,8군데 이상 끊어져 있다. 전체 길이는 800m 가깝다고 하는데 현재 남은 것은 400m 가량이다. 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을 살펴보아 성의 본래 형태는 절벽 또는 급경사의 지�위에 큰 산돌들을 높이 2~4m정도로 쌓였으며 일부는 흙과 돌로 섞어 쌓이긷 하였다. 성벽의 폭은 약 2m 가량 되었다. 산의 동쪽인 신전리(新田里)쪽으로 성문터가 있으나 성문은 남아있지 않다.
 
제비원
안동시 이천동 제비원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불로, 정식 명칭은 [안동이천동마애불입상]이며, 보물 제 1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은 옛 연미사(燕尾寺, 속칭 제비원) 터로 전하는 곳의 서향한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몸체는 넓은 천연암벽에 새기고, 머리는 다른 돌로 조각하여 올려놓았다.
11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머리의 뒤쪽은 파손되었으나 앞쪽은 완전하며, 육계(肉 실사 변에 介 = 부처의 32상 중 하나로 정수리 부분에 혹 모양으로 솟아 있는 것)가 높고 소발(素髮)이며, 얼굴형은 갸름하다.

 

이목구비는 크고 조각수법이 예리하며, 특히 옆으로 길게 뻗어 깊게 팬 눈과 높은 콧날은 얼굴의 단순한 윤곽과 어울려 위압감을 준다. 또한 입술의 굴곡진 형태가 사실적으로 완벽하게 묘사되어 얼굴에 생동감을 준다.턱 밑에는 목걸이가 도드라지게 표현되어 있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다. 양쪽 어깨에까지 직선으로 내려오는 법의 주름과 가슴을 가로지르는 내의의 띠를 간략하게 선각으로 표현했으며, 양쪽 손은 얕게 부조하여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했다.

 

오른손은 배에 대고 왼손은 가슴 앞에서 장지와 엄지를 맞대고 있는데, 아미타구품인 중품하생인(中品下生印)인 듯하다. 발 밑에는 커다란 단판(單瓣) 연꽃무늬가 음각되어 대좌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머리를 별석으로 조각하여 올린 거대한 마애불로는 경기도 '파주용미리마애불입상(보물 제93호)'과 공주 계룡산의 마애불이 있는데, 고려시대의 거석불(巨石佛)이 괴체화(塊體化)되는 현상의 한 줄기를 이룬다.
 
도산서원 陶山書院 사적 제170호 (1969. 5. 28)

도산서원전경 / 안동시청

이 서원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을 향사(享祀)하는 도산서원이다. 선생은 1561년(명종 16)에 도산서당 건립하고 학문연구와 인격을 도야하였는데, 선생이 타계하자 문인들의 발의에 의해 서당이 있던 자리에 서원을 건립키로 하였다.

 도산서원 전교당 보물210호(1963.01.21)/ ‘도산서원’이라는 현판 글씨는 명필 한석봉이 임금님 앞에서 쓴 글씨라고 전한다.

1572년(선조 5)에는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에 모실 것을 결정하였으며 1574년부터 서원을 짓기 시작하여 1576년에 완공하였다. 선조는 도산서원이란 현판을 사액하였는데 그 편액은 당시의 제1인자라고 손꼽히던 명필 한호(韓濩)의 글씨이다.

 

- 관련 인물 및 유적 (유물전시관 -영모각)
퇴계 이황(退溪 李滉) : 약 400종의, 4000여권에 이르는 장서와 장판 및 이황의 유품.
- 형태/방법/업적
이 서원의 건축은 모두 무사석계층(武砂石階層)이며 방주(方柱)의 사용이나 초공(草工)을 끼운 대들보의 간략한 가구(架構) 등 전체적으로 간소하다. 서원 안에는 약 400종에 달하는 4,000권이 넘는 장서와 장판(藏板) 및 이황의 유품이 남아 있다. 대원군(大院君)의 서원 철폐 때에는 소수서원(紹修書院)·숭양서원(崧陽書院) 등과 더불어 정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1969년 문화체육부에서 해체 복원하여 면목이 일신되었다.

 

 도산서당/안동시청

도산서원은 크게 도산서당과 서원의 구역으로 나뉠 수 있는데 서당은 퇴계 이황 생전에 생전에 유생들을 모아 교육하던 곳으로 도산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선생의 실천적 학문과 검소함이 잘 나타나 있다. 도산서당, 농운정사, 역락서재가 도산서당의 구역이다.
 
하회마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122호이다. 예로부터 유림의 고장이었던 이곳은 한국의 대표적 동족 부락으로, 국보를 비롯해 보물, 중요민속자료, 중요무형문화재 등 값진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어 1984년 1월 민속보존마을로 지정되었다.
동쪽은 태백산의 지맥인 화산(321m)이 감싸고 있으며, 낙동강이 서·남·북 경계를 따라 마을 전체를 태극형으로 감싸 흐른다. 이는 풍수지리적으로 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을 이루는 길지(吉地)로 임진왜란 때는 전화를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회마을 입구의 연꽃지

서북쪽으로는 울창한 노송림대가 있으며, 마을 중앙에는 6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어 삼신당나무로 삼고 있다. 강 건너의 부용대는 천연의 병풍과 같은 형태를 자아내며, 이 일대는 백사청송이 어울려 경승을 이룬다.

 부용대   

과거 신분제 사회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300~500년 된 130여 호의 유서깊은 대·소 가옥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 중 유운룡의 종택인 안동양진당(보물 제306호)과 서애 유성룡을 모신 종가인 충효당(보물 제414호)을 비롯해 하회북촌택(중요민속자료 제84호)·하회원지정사(중요민속자료 제85호)·하회빈영정사(중요민속자료 제86호)·하회유시주가옥(중요민속자료 제87호)·하회옥연정사(중요민속자료 제88호)·하회겸암정사(중요민속자료 제89호)·하회남촌택(중요민속자료 제90호)·하회주일재(중요민속자료 제91호) 등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이곳의 오랜 민간전승놀이로 하회별신굿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와 강상유화(江上流花) 놀이인 줄불놀이가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에 쓰이던 하회탈은 국보 제121호로,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소재 병산서원은 사적260호로 지정되었다.  
 
하회탈및병산탈 국보121호(1964.03.30)

 하회탈/안동시청

경상북도 안동군 하회마을과 그 이웃인 병산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탈로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탈놀이 가면이다.
하회탈로는 11개가 전해지는데 주지 2개, 각시, 중,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 부네, 백정, 할미 탈이 있다. 이밖에 총각, 별채, 떡다리 탈이 있었다고 하나, 분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병산탈로는 2개가 남아 있다.
한국의 가면은 대개 바가지나 종이로 만든 것이 많아서 오래 보존된 예가 드물며, 그 해 탈놀이가 끝난 후 태워버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하회탈과 병산탈은 드물게 보이는 목조탈이며, 격식과 세련됨을 갖춘 유물이다.

 하회탈전시관

원래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거행되는 별신굿에 쓰이던 것이며, 마을마다 따로 가면들을 보존해 왔을 뿐만 아니라 탈에 대한 금기나 제약이 매우 엄격했다. 이 탈의 재료는 오리나무이며 그 위에 옻칠을 두겹 세겹으로 칠해 정교한 색을 내고 있다. 턱은 따로 조각되어 있어서, 아래턱을 노끈으로 달아 놀이할 때 움직이게 함으로써 생동감을 주도록 되어 있다. 하회 가면 중에서도 특히 양반과 백정은 세련된 입체감과 표현기교를 보여주고 있다.
이 탈들의 제작자와 제작연대는 알 수 없으나 마을에는 허도령이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다만 하회마을에 살았던 사람에 대한 기록으로 허씨가 살았고, 안씨 집안이 들어온 후, 유씨가 조선 전기에 살았다고 기록이 되어 있어 대체로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안동음식문화
안동은 지형적으로 산이 많고 논보다 밭이 많기 때문에 고추, 마늘, 참깨 등의 농산물이 많이 생산되므로 안동지방의 음식은 양념이 많고 비교적으로 맵고 짠것이 그 특징이다.
김치를 담그거나 찌개를 만들 때면 으레 고춧가루와 마늘 등의 양념을 많이 넣었으며, 김치가 짜고 맵다하여 "짠지"로, 생선을 맵게 끓인 탕이라 하여 "매운탕"이라 부른다.
검소함을 생활신조로 살아온 선비의 고장답게 음식을 만들 때에 멋과 사치를 내지 않았으나, 식사에는 국을 빼놓지 않았는데, 국은 콩가루국이나 무우국을 많이 해 먹는다.
안동은 낙동강이 관류하므로 민물고기가 많아 매운탕을 즐겨 먹었으며, 특히 낙동강의 은어는 그 맛이 뛰어나 임금에게 진상품으로 올리기도 하였다.
바다 생선으로는 고등어에 소금간을 하여 숙성시킨 것을 안동 간고등어라 하여 자반으로 애용되고, 전통음식으로는 겨울철의 안동식혜와 여름철의 건진 국시(국수의 방언)를 별미로 하며, 그 밖에 헛젯밥, 파산적 등이 있다.
 
하회마을민박
하회마을 내에서 옛 정취를 느끼면서 조용히 민박을 할 수 있으며, 외국인 등이 선호하는 저택입니다.
가장큰 민박 [정휘교] 054-853-2388 / 019-537-2388

 감나무집 민박 [류한철] 054-853-2975 / 010-5550-1181

고기와 민박 [이임분] 054-853-2947
고향의 품 [류세하] 054-853-8891 / 011-342-8895
고창댁 민박 [이회주] 054-853-9188
 
자료 / blog.empas.com/kwon3572 [노래사랑권오신]  / 안동시 문화관광과

[출처] 안동 8경|작성자 권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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