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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에 대한 평가

배디링 2019. 10. 19. 12:08

어려서 보았던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에, 조조라는 이름의 캐릭터는 참으로 "간교한 인물"로 그려져 등장합니다. 오만한 표정, 날카롭게 찢어진 눈매, 가늘어서 날쌔면서도 끝이 교만하게 살아있는 수염 ...... 의상도 주로 검은 옷에 ....... 참 고우영 그 양반이 캐릭터 하나는 특징적으로 잘 그려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건 어렸을 때의 일이고, 초등학교 고학년 언제쯤인가 ...... 흥부는 게으르고 무책임한 놈이고 놀부야말로 진짜 성실하고 책임감도 있고 사리분별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러니 놀부 정신을 배우라고 했던 선생님의 이야기는 꽤 충격으로 들렸었지요.

 

두번째 유사한 충격이 바로 조조에 대한 평가입니다. 조조에 대해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간웅"이라고 했던, 허소의 압축된 표현은 조조에 대한 가정 적확한 묘사라고 인정받을 만합니다. 그러나 간웅(姦雄)이란 말에서 간(姦)만 계속 강조됐지 웅(雄)은 그 의미를 발하지 못하고 찌그러져 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간웅'이란 말은 소설 삼국지에서 조조의 캐릭터를 극적으로 묘사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허구의 조조가 그렇다는 것이지, 역사 삼국지에서의 조조는 소설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의 인물입니다.

 

역사 속에서의 조조는, 걸출한 정치가이고, 뛰어난 군사전략가이자 병법 이론가였고, 훌륭한 문학가였습니다. 역사에서의 조조는 그야말로 우리가 선입견으로 알고 있는 조조와는 완전히 다른 하나의 영웅적 인물입니다.

 

그가 살았던 한나라 말기 황실은 완전히 개판이었습니다. 황제는 대부분 열살 전후에 황제에 올랐고, 그래서 어린 황제를 둘러싼 외척들이 권력을 잡고, 기존에 권력을 농단하던 환관들을 몰아세우자, 환관들이 외척을 싹 죽여버리고, 그 외척이 불러들인 군대가 환관을 몰살시켜 버리고 ....... 그리고 농지약탈과 부역에 시달리다가 농토에서 떠나 유랑하던 농민들이 '황건적의 난'에 합세하여 전국을 쓸어버리던, 아주 혼란스럽고 고통스런 시절입니다.

 

조조는 이렇게 황제, 즉 정권이 근본적으로 휘청거리면서 폭삭 망하기 직전에, 황실과 권부를 장악해들어가면서 정치와 민생을 안정시킨 유능한 정치가였던 것이지요. 조조는 둔전법(屯田法)이라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개혁적인 정책을 실시해서 농업을 안정시켜 민생까지 안정시켰습니다. 이를 통해 농토를 잃고 떠돌던 많은 유랑민들을 토지에 정착시켰던 것입니다.

 

인재를 등용할 때에도 유재시용(惟才是用)이란 원칙을 세우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능력있는 놈들 뽑아쓴다는 겁니다. 부모를 잘 만난 무능한 귀족의 자제들을 배척한다는 것이지요. 지금이야 이런 말이 너무 당연한 듯 들리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정책입니다. 왜냐하면, 당시까지 인재등용은, 고관대작들이 지들끼리 추천하고, 지들끼리 대를 이어가면서 해먹던 시대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혈연이 아닌 능력에 따라 인재를 뽑는다는 정책은 아주 개혁적인 조치였지요.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지만, 기득권을 건드린다는 것은 정치가로서 자신의 모가지를 내놓는 것과 진배없었는데 ...... 보통의 정치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정책인 것이지요. 조조가 정치력을 잘 발휘해서 이런 정책을 펼쳤고, 그래서 위나라에 인재가 가장 많았고, 그래서 촉나라가 아닌 위나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입니다.

 

또 조조는 이론이나 문학에서도 뛰어난 인물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손자병법은 손자(孫子)가 쓴 <손자>라는 책에 담긴 병법입니다. 지금 이 <손자>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원래 손자가 쓴 그대로의 <손자>에, 조조가 주석을 붙인 업그레이드 된 <손자>를 기본으로 한다네요. 말하자면 병법에서도 조조는 이론가로서 상당한 능력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학에서도 마찬가지. 조조는 한나라 말기에 오언시(五諺詩)를 발전시켜서 그 이후 한나라 시가문학에서 오언시가 정통이 되도록 한 장본인입니다. 게다가 그의 아들인 조비와 조식 역시 문학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세 부자를 묶어서 <삼조(三曺)>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역사 기록 이외에 제가 개인적으로 조조에 주목하는 것은 그의 조직가로서의 능력입니다. 사람을 끌어모으고 그 사람들로 조직을 구축하고, 그 조직을 움직여서 대사를 도모했다는 말입니다. 가장 핵심은, 유능한 인재를 많이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직을 벗어나지 않고 규율하고 단속하는 것입니다.

 

조조가 사로잡은 관우를 자기 수하로 만들려고, 비단 수염주머니도 선물하고 적토마란 좋은 말도 선물로 주고, 미인들도 잔뜩 내주고 ..... 이것은 조조가 어리석어서가 아닙니다. 관우가 그만큼 유능해서도 아닙니다. 다만, 조조가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인 셈입니다. 

 

동탁이 황실을 장악하고 개판을 치자, 당시 그리 높은 관직도 아니었던 조조는, 전국의 제후에게 격문을 보내서 17명의 제후를 불러모아 연합군을 조직해 동탁에 대항합니다. 만일 조조가 그렇게 간사하기만 했다면 조조의 격문에 그 많은 제후들이 어떻게 모여들었겠습니다. 또 조조가 그렇게 흉폭하기만 했다면 왜 그렇게 많은 인재들이 조조 진영에 머물렀겠습니까.

 

이런 면을 오늘날의 이야기로 음미해보면, 조조는 인재를 모아 조직을 꾸릴 줄 알고(조직가), 경쟁상대와 겨뤄서 이길 능력이 있었으며(전략가), 개혁정책으로 민생을 안정시키고(행정가), 실전뿐 아니라 이론(학술가)과 문학(고급 엔터테이너랄까 .....)에도 뛰어난 말하자면, ...... 21세기형 CEO의 전범(典範)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이 깊은 것 가운데 하나는 그의 "웃음"입니다. 서모 교수가 조조 캐릭터를 이야기하면서 한 이야기인데, 삘~이 팍 꽂혀오는 내용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

 

<삼국지연의>를 보면 조조는 자주 웃더군요. 우리 속담에도 "유비냐? 울게."라는 말이 있듯이 유비는 노상 우는데 비해, 조조는 노상 웃더군요. 허소가 난세의 간웅이라 말하니 웃음을 터뜨리고, 왕윤이 대신들을 모아 놓고 동탁에 대해 고민할 때 박장대소하고, 음모를 발각했을 때는 냉소하고, 적벽대전 결전일 전에는 야망에 앙천대소하고, 화용도에서 패주할 때는 제갈량이 허허실실 전법을 모른다고 대소하고 ...... 그러니 "조조, 난세를 웃다" ....... 라고 할만하다.

 

자신이 힐난을 당하거나, 위기에 빠지거나, 중차대한 대사를 앞두고 있을 때에나 ..... 그는 그런 난세에 항상 웃는 존재였다는 것이지요. 그가 웃었다는 것은, 소설 속에서는 드라마틱하게 묘사되면서 웃는데, 역사에서도 그가 "웃었다(大笑, 笑)"라는 것은 동일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웃는다 ..... 그것이 냉소가 되든 폭소가 되든, 조조는 항상 웃었다는 게 재미있는 발견입니다.

 

소설 속의 캐릭터란 작가의 의도에 맞춰서 허구로 만들어낸 캐릭터인 것이라 굳이 역사 삼국지와 비견해서 이러니 저러니 할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오늘날 조조를 음미하는 방법의 하나로 그를 21세기형 CEO로 해석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반전이자 독특한 발상법이 될 수 잇다고 보입니다 .......

 

이 글을 혹시 읽는 분들의 생각은 어떨까 궁금합니다. 소설 속의 허구의 캐릭터를 두고 간웅이란 말을 떠올리는 것도 소설적인 현상이고, 역사에서의 조조를 찾아내 그를 음미하는 것도 재미있는 인문학이고 ......

 

역사든 소설이든 그 인물에 대한 긍정적인 면들을 찾아보는 것이 괜찮다는 생각이 드네요. 역사에서 긍정적이면 그것을 채택하고, 소설에서 긍정적이면 소설의 캐릭터를 떠올려보고 ......

 

그러고 보니까, 이게 바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이야기가 되네요 ㅎㅎㅎ

 

 

 

(사족) 그런데 이 글에 있는 세 장의 그림은 전부 중국의 엣날 조조 그림입니다. 이들이 그린 조조는 그렇게 간웅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에 비하면 고우영님의 그림은 조조가 진짜 간사해보이는데 ....... 우리나라 화가의 표현력이 훨씬 뛰어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우리나라의 일반적 시각이 훨씬 더 부정적이라는 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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