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가 196년 헌제를 모시고 와서 정치적 대권을 선점했던 허도(許都)의 위치는, 현재의 허창시 도심과는 약간 다릅니다. 허창시 외곽에 있는 장반고성(張潘故城)입니다. 현재는 완전히 평평하고 엄청나게 넓은 보리밭 한 가운데 그 유지(遺址)와 몇 가지 흔적들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장반고성에 있던 삼국시대의 허창궁을 위나라의 양수(조조가 정한 '계륵'이란 암호를 듣고 조조의 마음을 읽었다는 이유로 조조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문관)가 쓴 허궁부(許宮賦)에 근거해서 그린 복원도입니다. 허창일보(許昌日報) 2010년 1월 30일자에서 가져온 그림.
지금 이 지역은 끝이 안보일 정도 넓은 보리밭인데, 이 근처에는 최근에 장반고성이라고 표시하기 위해 지은 성문이, 전혀 고풍스럽지 않게 덩그라니 서 있고, 그외에 몇 가지 삼국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헌제가 허도로 와서 천자로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육수대(毓秀臺), 장비가 설던 집(張公祠), 헌제의 묘 등등이 이 지역에 있습니다. 우선 육수대부터 둘러보면 .......
높이 15미터 정도가 되는 육수대(毓秀臺).
조조가 모셔온 헌제가, 천자로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조조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허도에 들어온 헌제가 사실상 연금상태로 갇혀 살면서, 아마도 허도에서 올라간 곳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이었을 것 같네요. 허창일보 기자의 코멘트로는 "연금상태로 살던 헌제가, 자신이 천자라는 걸 자각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은 천자가 하는 일이었고, 이런 제사에 조조가 끼어들 틈이 없었을테니까요.
육수대 위에 올라가면 라오예먀오(老爺廟)가 있습니다.
육수대 위에서 내려다본 주변 농지. 헌제가 바라볼 때에는 농지가 아니라 도성이 보였겠지요?
한위허도 고성유지(漢魏許都 故城遺址) ..... 이런 뻘쭘한 성문이 정말 뻘쭘하게 다리 벌리고 서 있습니다.
성문 옆의 토성 흔적으로 보이는 곳, 토성의 윗 면은 역시 농토.
성문 옆의 밭에서는 옛날 기와조각 벽돌조각 등이 흔하게 보입니다.
이런 조각들은 대부분 한나라 시대의 것들이라고 하네요. 이곳은 조조가 헌제를 모시고 와 한나라의 수도가 되면서 허창성의 내성과 외성에 많은 건축물들이 지어졌었겠지요. 그리고 조비가 조조의 뒤를 이으면서 황제 자리에 오른 다음에 낙양으로 도성을 옮겨갔을 때에도 위나라 다섯 개 도읍의 하나로서 허창의 위상은 사그러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삼국을 통일한 위나라가 사마씨의 진나라로 뒤집어졌고, 그 진나라가 북방유목민족에게 무너지면서 남북조 시대가 됐습니다. 이 남북조 시대에 혼란한 내전의 와중에 허창은 완전히 폐허가 되다시피 했고, 이곳의 행정 중심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진조향(陳曹鄕)에 자리를 잡았답니다.
그 이후 다시 현재의 허창시 중심지역인 위도구(魏都區) 지역으로 허창의 중심이 옮겨졌습니다. 그러니 삼국시대 당시의 허도 이후에 다른 것이 별달리 없었으니 지금 나오는 기와조각들은 한나라 당시의 것일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