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자료

中国 陕西省 西安-汉中 自由旅行

배디링 2018. 8. 1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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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国 陕西省 西安-汉中 自由旅行

 여행기간

  - 2018년 3월 23일~3월 26일(3박4일)

  - 3월 23일(금) 10:10 인천공항T1 -12:25 시안 (아시아나항공 OZ347편)

  - 3월 26일(월) 14:00 시안 - 18:00 인천공항T1(아시아나항공 OZ348편)


여행계획

 - 중국 자유여행은 처음이라 사전 준비가 만만찮았다.  우선 항공권 예매와 비자 신청을 2주전에

   세중투어에 의뢰를 했다.

   (항공권은 늘 스마트폰으로 예매를 했었으나 세중투어에서 수수료 없이 대행을 해 주었다.)

 -  항공권 323,500원,  비자발급비용 45,000원.

 - 여행자보험 가입, 안동- 청량리 왕복 기차표 예매. 청량리역↔인천공항T1 이동계획.

 - 중국 시안 숙소 예약, 고속열차표(西安→漢中) 예매,  漢中→ 西安 항공권 예매 등.

 - 환전: 식비, 교통비, 입장료 등 약 2,000위안 환전 (1위안(CNY)=약 170원)


 여행지 소개


  섬서성陕西省 Shǎnxī Shěng, 서西安 Xī'ān


- 면적은 한반도와 비슷, 인구는 약 4천만.산시 성 지도

- 역사: 산시성의 성도 시안西安, Xī'ān周, 秦, 漢, 唐나라

  13왕조의 수도였고, 고대에는 長安이라 불림.

  로마, 카이로, 아테네와 함께 세계 4대 古都로,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다.

  유럽, 아라비아로 이어지는 비단길의 시점.

  1556년에는 华山 대지진으로 83만명이 죽는 참사.

  1935년~1948 마오쪄둥의 중국공산당의 근거지가

  바로 陕西省 옌안延安이다.

 


한중 汉中,  Hànzhōng

 - 楚漢전과  三國시대의 격전지였던 漢中은 시안시의 서남쪽에 위치 

- 秦나라  말기,  함양을 점령한 항우는 강력한 경쟁자 유방을 漢王으로 봉해 漢中으로 쫓아 보냄. 

  그러나 유방은 험난한  한중에서 힘을 비축하여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우게 된다.

- 400여년 뒤 한나라 말기에는 조조의 위나라와 유비의 촉나라의 국경 지대였으며, 전략적 요충지였다. 

  한중을 정벌하러 온 조조는 한중을 가리켜 계륵(鷄肋)이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 한중의 지리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말은 촉도난(蜀道難)이다. 촉으로 가는 길은 험난해서 하늘에

  오르기보다 더 힘들다는 뜻이다.

- 초한지와 삼국지 관련 유적지가 많다.  석문잔도 石門棧道, 무후묘武侯墓 (제갈공명의 묘), 武侯祠 등.



    여행일정


    제1일 (3월 23일 금)

    안동→ 인천공항T1 이동

       - 안동역 02:21 무궁화→ 청량리역 05:47 도착

       - 청량리역 06:17 경의중앙선 전철→ 공덕역 06:57 공항철도 환승 → 07:52 인천공항 T1 도착

       ☞  승차권 구입: 경의중앙선 청량리역에서 공항1T까지 매표→1회용 교통카드 (65세 이상 무임)


    10:10 인천공항T1 출발 12:25 시안 도착 (아시아나항공 OZ347편)

        시안/셴양공항→시안 和頤酒店종루钟楼 고루 회족거리 回坊 →시안성벽 西安城墙


    인천공항 1터미널.






            西安공항




    시안공항에서 숙소로 이동 중.






    이틀동안 묵었던 시안 중심가 호텔 和 颐 酒 店





    和 颐 酒 店 명함. 






    거리의 악사?






    종루钟楼)

    종루는 새벽을 깨우는 역할을 했었다. 종루에서 타종을 하면 밤새 닫혀 있던 성문이 일제히 열렸던 것이다.  

    종루(鐘樓)는 서안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종루의 누각은 정사각형으로, 벽돌과 원목을 이용하여 36m

    높이로 지어졌다. 중국 전역에 있는 수많은 종루 중에서 역사와 예술적 가치가 으뜸으로 꼽힌다.










    고루

    종루에서 가까운 고루는 종루보다 4년 앞선 1380년에 축조되어서, ‘밤을 알리는 시계’ 역할을 했다.

    고루에서 북을 치면 시안의 성문이 일제히 닫혔던 것이다.

    전체 높이가 33m로 종루보다 약간 작지만 명나라 초기 목조 건축의 정수로 꼽힌다.









    회족거리 回坊


    중국의 이슬람을 회족이라 하는데, 외양은 중국인과 동화되어 이슬람의 모습은 보기 드물다.

    당나라 때 상인으로 들어와  처음 정착 생활을 한 지역이 산시 성(陕西省)으로, 현재 산시 성에 거주

    하는 회족은 5만여명이다. 회족거리는 실크로드로 들어온 이슬람 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길거리 간식 중에서 납작한 빵 가운데를 반으로 갈라 간장에 조린 고기를 넣은 러우자모(肉夹馍),

    각종 꼬치구이(串, 촨), 그러나 이 거리에서 만사 제치고 맛봐야 할 음식은 ‘양러우파오모(羊肉泡馍)’다.

    일명 양고기 떡국이라고 불리는 회족의 고유 음식.


    그러나 내가 출발하기 전부터 벼르고 별렀던 음식은 방방면(biang biang mian)이다.

    중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한자 중 획수가 가장 많은 57획으로 만들어진 음식이름.



    西安의 전통음식 방방면(biang biang mian) 이야기

    방방면(biang biang mian)은 옛날 시안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먹었던 음식.

    2014년 중국을 방문한 대만 국민당 명예주석에게 시진핑 주석이 대접해서 유명해 진 요리로,

    두 사람의 부친이 모두 陕西省 출신인 점을 감안하여 만찬때 고향의 전통음식을 내 놓았다는 것이다.
    당나라의 수도였던 長安(陝西省 西安)의 전통국시로 허리띠처럼 면발이 넓고 길다.


    이 글자가 만들어진 유래 2가지.

    진시황이 어느날 백성들이 즐겨먹는 국수를 맛있게 먹은 뒤 다시는 백성들이 이 국수를 먹지 못하도록

    글자를 알아볼 없게 만들었다는 고사가 있다. 

    다른 하나는 무일푼인 선비가 길을 가던중 음식점 앞을 지나다가 반죽판에 면 뽑는 소리가 뱡뱡거리며

    들리길래 가던 길을 멈추고 들어가서 면을 먹고 음식값 대신 써 준 글자.

    57획, 방언에서만 사용되는 문자로 취급되어 자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서안 성벽 西安城墙

    당나라 때 장안 황성(长安皇城)으로 축조했던 성벽이 원조다. 당나라 말기에 장안 황성 대부분이

    파괴되면서 수도를 뤄양으로 옮겼고, 1374년 명나라가 방어 체계를 구축할 목적으로 새로 이 성벽을

    쌓았다. 시안시가 1983년부터 무려 20년에 걸쳐서 명나라 때의 성벽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높이 12m, 폭 15m, 총 길이 13.7km에 달하는 성벽으로, 총 98개의 성루가 성벽을 따라 이어진다.

    가장 완전하게 보전된 옛 성벽이다. 남문은 옛부터 사신들이 장안에 입성할 때 이용했던 문이다.



    어둠이 내린다. 마침 남문 등축제기간이라 야경을 즐기기엔 딱이다.






    남문 입장권.  60원이다.


















    성벽 남문에서 바라보는 시안 시가지는 화려하고 생동감이 넘쳐나고,


    중국인들의 얼굴에도 자신감과 생기가 묻어난다.















    제2일: 3월 24일(토)  오전: 화산 华山, 


    서안에서 서쪽으로 120KM 떨어져 있는 화산은 중국의 오악(五岳)중 서악(西岳)에 속하는 명산으로

    다섯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오악중에서도 산세가 가장 험난하기로 유명하다.

    보통의 산들이 흙과 암석으로 이뤄졌다면, 화산은 오로지 화강암으로만 되어 있어, 큰 바위 덩어리 하나가

    거대한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빛을 받으면 눈부시게 빛난다하여, 빛날화(華)자를 써서 화산이라 불리며, 

    현재 북봉과 서봉에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는데, 우린 좀 비싸긴 해도 서봉 케이블카를 이용하기로 했다.

     ※ 서봉 케이블카 특징: 편도 25분 소요. 케이블카를 타고 거대한 능선을 넘는 순간 경악을 하게 된다.

     웅장하고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가 눈앞에 펼쳐지는데 케이블카는 깊은 계곡으로 쭉 내려가다가 다시 가파른

    암벽을 타고 하늘로 치솟는다.  화산 5개의 봉우리 중 서봉(연화봉)이 가장 아름답다.

    *서봉 케이블카 : 풍경구 입구 →셔틀버스 이동(약 40분) → 케이블카 탑승→케이블카 하차(서봉 2080M 지점)

     →서봉 답사→남봉(최고봉)


    화산(華山)의 서쪽에 있는 연화봉 정상은 정통적인 검파(劍派)인 무림 화산파의 본거지다.

    김용의 무협지 <소오강호>, <의천도룡기>, <벽혈검> 등에 중심이 되는 문파로 등장한다.


    華山 입구, 여기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케이블카까지 약 40분간 이동하게 된다.


                   셔틀버스표 편도 40원×2


    화산 입장료 180원으로 상당히 비싼데 여기에서도 경로우대로 0원이다.


    화산에는 서봉과 북봉에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는데, 우리는 좀 비싸더라도 최고봉인 남봉에 오르기 위해

    서봉 케이블카를 이용하기로 했다.  요금은 편도 112원×2.  여기에도 65세이상 25% 할인.



    셔틀버스에서 내려,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약간 걸어야 한다.











    화산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서봉 정상이다.












    화산 최고봉인 남봉 오르는 길
























    3월 24일(토)   오후: 병마용 兵马俑


    진시황 병마용은 세계8대 불가사의로 꼽힐 만큼 거대한 규모와 정교함을 갖추고 있다.

    병마용이란 진흙으로 빚어 구운 병사와 말을 가리키는데, 실물크기의 병사 도용(陶俑)은 진짜 활과

    칼을 들고 있으며 저마다 독특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 병마용은 1974년 농부들이 우물을 파다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병마용 갱에는 통로에 약 8000의 병사가 4열종대로 세워져 있고 나무 뚜껑이 덮여 있었다. 지어진 지

    2200년이 흘러 무너진 곳도 있고 조각이 떨어져 제 모습이 나오지 않는 병마용도 많다.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더 이상 발굴을 하지 말라고 하여 중지된 상태라고 한다.


    진나라 역사 개요

    - 秦나라 (BC221~BC206)  전국7웅을 평정하고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수도는 셴양咸阳

    - 三皇五帝에서 '황'과 '제'를 따서 황제(皇帝)라 칭하고 처음이니 始皇帝. 

    - 시황제 실정(만리장성,아방궁 분서갱유 등)으로 항우와 유방의 협공을 받고 15년만에 멸망.

    - 법치, 문자통일, 군현제, 만리장성 등 진취성과 개척성으로 국위가 서방에까지 떨치면서 A학점을

      받았으니 진(chin)이 china의 기원이 됨.

    - 진의 멸망: 진시황 사망 후 각지에서 반란. 그 중에 가장 강력했던 항우가 유방의 도움을 받아 진의

      수도 함양을 점령(bc 206년)

    - 한중땅으로 쫒겨났던 유방이 항우와 사투를 벌이다가 마지막 해하전투에서 한신의 사면초가 계략으로

      항우는 대패하고 결국 오강(乌江)에서 자결.

      BC202년 유방은 장안(서안)에 도읍을 정하고 한왕조를 세움.






    화산에서 간식을 먹긴 했으나 배가 고파온다.

    진시황병마용 관람전에 입구의 식당에서 늦은 점심.





                             진시황병마용 입장권. 150원이다.


























    병마용 관람을 마치고 만찬이 예약된 서안시 중심가 식당까지 지하철을 이용했다.

    전동차나 지하철 시설이 오래되지 않은 듯 깔끔했는데... 여기서도 공항처럼 보안검색을 한다.

    铁票 4원으로 싼 편이나 65세 이상 우대는 없다.





    전동차에 따로 준비된 노약자석은 없으나...

    心座- 노인,장애인,임산부 등 노약자에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대하자는 구호가 붙어 있다.



    지하철은 상당히 붐볐으며 대부분 젊은이였다. 



    시안 중심가 대형복합상가건물 에스컬레이터. 51m로 내가 타 본 에스컬레이터 중 최장이다.

    7층의 식당가는 너무 복잡해서 혼자서 화장실을 갔다가는 미아가 되기 십상이다.

    중국 미녀들의 연주를 들으면서 즐긴 색다른 만찬에 한결 가벼워짐.




    만찬을 마치고 双层公车(2층버스, 요금 2원)를 탔다.

    2층 앞자리에 얼릉 자리를 잡고 야경 한 컷. 중국 여자들의 복장이나 표정이 상당히 밝고 세련...





    제3일: 3월 25일(일)  한중 汉中 Hànzhōng 



    秦나라  말기,  함양을 점령한 항우는 강력한 경쟁자 유방을 漢王으로 봉해 漢中으로 쫓아 보냄. 

    그러나 유방은 험난한  한중에서 힘을 비축하여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우게 된다.

    -  (BC202-220) 은 전한, 후한으로 나뉘며,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왕조(400여년)

    - 漢族, 漢字, 漢語의 漢은 모두 漢中, 漢水, 漢나라에서 따 온 것이다. 

    - 한의 멸망: 후한 말기에 정권을 잡은 동탁은 여포에게 암살 당하고(초선의 미인계), 조조가 실권을 잡는다.

       208년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배한 후, 중국은 3개의 나라로 갈라졌고, 조조는 북쪽, 손권은 동쪽,

       유비는 서쪽을 각각 지배했다. 220년 조조가 사망하고 그해 조조의 아들 조비가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의 제위를 찬탈, 위 황제에 오르니 이로써 한나라는 멸망하게 되었다.


    三國時代 (220-280)

       -  위(조조 220-265),  촉(유비 221-263),  오(손권 229-280)

       - 적벽대전 : 북쪽을 제패한 조조는 유비의 형주를 점령하고 손권의 강동까지 정벌하기 위해 적벽에

         진을 친다. 유비와 손권의 5만 연합군으로 20만이 넘는 조조군을 화공으로 기습하여 대승을 거둔다.

         승리의 주역은 오의 주유와 촉의 제갈량. 이 때부터 위, 촉, 오 삼국이 정립하는 계기가 된다.

       - 유비는 관우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 정벌에 나섰으나 대패하고 병사한다. 이후 제갈량이 이끄는 촉군은

         여러차례 위 정벌에 나섰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장원의 진중에서 병사한다.  

       - 위의 실권자 사마소는 촉을 멸망시키고(263년), 아들 사마염이 위 황제로부터 제위를 찬탈, 晋황제에

         오른다.(265년)

         晋황제 사마염은 오 마져 멸망시키고(280년) 천하통일을 이루었으니 바로 진晋이다.

       

    晋나라 진수가 쓴 <삼국지>는 후한이 멸망하고 삼국이 정립한 뒤부터 진(晋)나라가 통일을 이룬

        시기까지를 기술한 역사서이다. 일반적으로 ‘삼국지’라 하면 명나라의 나관중(羅貫中)이 지은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가 더 유명한데, 삼국지를 바탕으로 하여 쓴 소설이다.



     汉中市 로 가는 고속열차를 타기 위해 06:00에 西安北站 도착. 여기서도 공항처럼 보안검색을 한다.

    고속도로와 고속열차가 최근에 개통되어 한중까지 1시간 반 소요.

    전에는 험준한 진령산맥을 넘어 한중까지 약 4~5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한중시는 여행사 상품에 없기 때문에 한국 관광객이 여기까지 올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번 여행의 백미는 바로 초한지, 삼국지의 고장 한중 방문이다.




    西安北站 07:05 출발  汉中站까지 가는 고속열차표. 97원이다.

    표 하단에 승객의 영문이름이 찍혀 있는데, 이건 이장춘 선생님 표네



    열차시간을 기다리며 面包(빵)와 과일로 아침식사


    협착증으로 허리가 끊어지는 듯 통증이 심해서 파스 부착 중.



    서안북역을 출발한 고속열차는 진령산맥 터널을 통과하는데만 50분 정도 걸린 듯.

    터널이 끝나고 드넓은 한중분지로 접어드니 온통 유채꽃이다.






    리선생의 친구가 준비한 이 멋진 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중시청에 근무하는 리선생의 친구 내외와 여덟살 예쁜 딸이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武侯墓(제갈량 묘)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올해 여덟살  薛田汀이 먼저 노래를 하고 답례로

    내가 펑요우 朋友, 이어서 明明이 萍聚를 불렀다.





    武侯墓(제갈량 묘).  입장료는 70원









    西安과 漢中에는 정원이나 도로변에 박태기꽃이 많았다.

    사진을 찍을 때면 살짝 긴장하는 8살 중국소녀 薛田汀








    三顧草廬

    후한 말엽, 유비는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한실(漢室)의 부흥을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유능한 참모의 필요성을 절감한 유비는 남양에 은거하는 제갈량(諸葛亮)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관우, 장비와 함께 그의 초가집을 세 번이나 방문한 끝에 그를 군사(軍師)로 모실 수가 있었다.

    이때 제갈량은 27세, 유비는 47세였다.

    '三顧草廬"는  제갈량이 첫 번째 북벌을 나서기 전, 유선(유비의 아들)에게 바친 〈출사표(出師表)〉에서

    찾아볼 수 있다.





    出师表

    중국 삼국시대(220~280년)에 당시 촉한의 승상이었던 제갈량(諸葛亮-184~234)이 후주(後主)인

    유선에게 북벌을 하기 위해 올린 상소문이다.

    후세 사람들이 이 글을 보고 울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라고 전해지며 그 원문은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빼어난 문장과 애국심, 선제 유비에 대한 충성심이 담겨 있는 글로 오늘날까지 크게 칭송받고 있다.





    한글 안내문이 반갑다.




    제갈량 무덤에 자라는 이 나무는 이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유일한 나무라고 한다.




    제갈량사당 입구의 군고구마 장사.  고구마 굽는 솥이 무슨 문화재인 줄 알았어요...



    武侯祠 제갈량사당,  입장료는 40원




    파촉(지금의 사천성) 성도에서 한중으로 통하는 옛길이었다고 한다.








    관강루觀江樓에서 보는 적벽대전을 재현한 공원

    적벽대전 : 북쪽을 제패한 조조는 유비의 형주를 점령하고 손권의 강동까지 정벌하기 위해 적벽에

    진을 친다. 유비와 손권의 5만 연합군으로 20만이 넘는 조조군을 화공으로 기습하여 대승을 거둔다.

    승리의 주역은 오의 주유와 촉의 제갈량. 이 때부터 위, 촉, 오 삼국이 정립하는 계기가 된다.

    한중에는 제갈량의 출사표, 삼고초려, 적벽대전을 중심으로 사당과 공원을 조성하고,

    금관극장의 表演도 바로 출사표이다.







    삼고초려하는 유비, 그게 못마땅한 관우와 장비

    8살 중국소녀 薛田汀은 줄곧 내 손을 잡고 다녔고, 아래 사천요리 훠궈를 먹을 때도

    양념소스를 만들어 주는 등 서비스 만점...




    중국에 가면 꼭 먹어야하는 사천 샤브샤브(훠궈)

    깊게 끓인 육수에 소고기, 양고기 등 다양한 고기와 신선한 야채를 살짝 데쳐 먹는 요리(훠궈)로

    지금까지 먹어본 중국 전통음식중에서 제일 비싼 듯...

    나무젓가락이 유난히 길다.


    제갈량과 만두 이야기

    촉한의 제갈공명이 남만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노수라는 강을 건너려는데 갑자기 풍랑이 일어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이유를 알아본 즉 억울하게 죽은 원혼이 노해서 그런 것이니 49명의 사람머리를 베어

    제사를 지내면 풍랑이 멎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살생을 할 수 없다며 밀가루를 반죽해 사람

    머리모양으로 만들고, 그 속에 소와 고기를 채워 강물에 던져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饅頭라는 한자도 오랑캐의 머리인 蠻頭 또는 속일 만자 瞞頭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錦冠劇場, 제갈량의 출사표 表演




    석문잔도 가는 길. 






    석문잔도 石門棧道

    유방이 관중에서 항우에게 굴복하고 한중왕에 봉해지면서 험준한 진령산맥을 넘어 한중으로 쫓겨날 때

    이 곳으로 통하는 잔도를 모두 태워버렸다는 고사가 있다.

    400년 뒤 제갈량이 북벌을 위해서 촉의 물자를 한중으로 옮겼다는 길 역시 이 잔도이다.

    이러한 고사에서 알 수 있듯이 한중은 잔도(棧道)를 통해서만 연결되는 곳이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잔도(棧道)라 함은 절벽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지지대를 가로 박은 다음에, 지지대 위를 덮어서 낸 길.


    서안에서 성도에 이르는 길 가운데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잔도는 포야도(褒斜道)이다.

    포하(褒河)의 수면 가까이 낸 잔도인데, 1975년 석문 댐을 건설하는 바람에 지금은 물에 잠겨버렸다.


    이 댐 역시 적지 않은 유적지를, 적지 않은 역사의 흔적들을 물 아래로 감춰버렸지요.

    이 포야도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새로 만든 길이 바로 석문잔도(石門棧道)입니다. 



    석문댐













    포하에 서식하는 물고기 형상의 바위









    이번 여행의 마지막 만찬은 포하에서 잡은 물고기 매운탕




    漢中의 우리 숙소 바로 앞을 흐르는 강변에 마침 噴水쇼가 시작



    숙소 인근의 아늑한 찻집에서 茶談.  모두 피곤한 기색이 역력...




    제4일: 3월 26일(월)  漢中→西安→安東


    汉中에서  西安은 항공편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항공권은 190원.



    중국 漢中국내선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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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시안(西安) 자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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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빈 (效彬) 18.07.09. 13:33
    아재 줃국은 언제 갔다 왔나요?
    여행 많이 하시네요.